마야 문명의 기원과 특성
인류의 문명은 대부분 큰 강의 중심으로 시작됐습니다. 인류 최초의 문명으로 알려진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황하, 인더스, 나일 모두 그렇죠. 온화한 기후와 큰 강을 끼고 있어야 토지가 비옥해지고, 그 비옥한 토지에서 나오는 농작물들을 기반으로 인류의 문명이 발전할 수 있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상식입니다. 그러나 세계의 여러 문명을 들여다보면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문명들도 존재합니다. 중남미의 고대 문명 중 가장 찬란한 문화로 꼽히는 마야 문명도 그중 하나인데요. 마야 문명은 커다란 강이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험준한 밀림 속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당시 수레를 사용하지 않았던 마야인들이 어떻게 밀림 속에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는지도 크나큰 미스터리로 남아 있죠. 게다가 마야 문명은 사회와 경제 제도, 천문학, 수학, 그리고 예술적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중남미 고대 문명으로 평가받고 있는데요, 이 부분도 마야인들이 어떻게 문명을 발달시켰는지 아직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야인들이 한순간에 자신들의 도시를 버리고 홀연히 사라져버려 일각에서는 마야 문명이 외계인의 문명이란 주장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마야 문명은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 걸까요? 누구나 한번쯤 호기심을 가질 만한 사라진 보물의 행방부터 미스터리한 전설까지 모두 파헤쳐보겠습니다.
마야 문명의 발달과 성취
마야 문명은 기원전 2000년부터 약 17세기까지 3,800여 년에 걸쳐 번영을 누렸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의 멕시코 동남부 일부와 과테말라, 벨리즈, 엘살바도르 북부, 온두라스 서부 일부가 마야 문명의 영향권이었죠. 마야 문명이 신비로운 문명으로 꼽히는 이유는 바로 이 위치에 있습니다. 이들이 도시를 세운 곳은 열대우림 한가운데인데요, 이곳은 풀과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어 독거미와 같은 해충에 노출될 위험이 크고, 덥고 습한 날씨로 전염병이 퍼지기 쉬운 환경이죠.
게다가 마야 문명의 대표 유적지 중 하나로 꼽히는 티칼에는 대형 피라미드와 궁전, 신전 등 다양한 석조 건축물들이 존재하는데요, 이 개수가 무려 3,000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마야인들은 이렇게 큰 건축물을 만들었음에도 밀림과 연결하는 도로를 만들지 않았다는데요. 심지어 무덤 속에서 바퀴 달린 장난감이 출토된 것을 봤을 때, 수레바퀴의 용도를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마야인들은 바퀴를 사용하지 않고 자재들을 직접 날랐다고 하죠. 때문에 마야인들이 왜 굳이 수많은 인력과 노동력을 이용해 밀림 한가운데 도시를 건설했는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마야 문명의 미스터리는 고도로 발달된 그들의 수학과 천문학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마야인은 세계 최초로 영의 개념을 이해하고 사용했으며, 태양력에서의 1년이 365.24201일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최첨단 기술로 계산한 1년은 365.2421일인데, 차이가 아주 적죠. 마야 문명이 수학과 천문학을 고도로 계산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인데요, 이 점은 마야 문명의 정수가 모두 담겨있는 결정체 쿠쿨칸의 신전 엘카스티요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야 문명의 멸망과 미스터리
엘카스티요는 마야 뱀의 신 쿠쿨칸을 모신 신전으로, 30m에 달하는 91개의 돌계단을 4면에 두었는데 이 합을 계산하면 총 364개 단위며 정상의 재단 하나를 더하면 총 365개, 즉 마야인들은 1년이 365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죠. 뿐만 아니라 1년 중 밤낮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과 추분의 우가 되면 피라미드 북쪽에 위치한 뱀 머리의 그림자가 생기는데요, 이 모습이 마치 뱀이 꿈틀거리며 사원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죠. 마야인들은 뱀이 만물을 재생시키고 풍요로움을 준다고 믿어 바로 이때 씨앗을 뿌리고 수확했다는데요, 이것 또한 마야인들이 해의 각도와 건물의 배치를 치밀하게 계산해 엘카스티요를 설계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학과 천문학에서 기이할 정도로 월등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마야인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이런 지식을 습득할 수 있었는지 밝혀진 것이 없어 미스터리로 남아 있죠.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생기는데요, 이렇게 철저히 계산해서 만든 거대한 도시를 마야인들은 왜 버리고 떠나야 했을까요? 마야 문명의 멸망 원인은 현재까지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스페인과의 전쟁이 멸망 원인으로 꼽히기는 하지만, 스페인 정복자들이 마야 문명 도시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다수의 도시가 폐허가 된 상태였다는데요, 그나마 남아있던 소도시를 스페인 군대가 점령했고, 이때 남아있던 기록이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때문에 대도시를 이루며 살던 마야인들이 왜 사라졌는지 알 수 없게 된 것인데요, 이에 대해 학자들은 전염병과 외부 침입설, 화산 폭발 등 다양한 이론들을 제기해 왔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세계 각국 연구진들이 하나의 이유를 유력한 원인으로 꼽고 있는데요, 바로 가뭄입니다. 한 연구팀은 연구를 통해 마야 문명의 고전기에 해당하는 800~1000년 당시 강우량이 평소보다 40~54%, 심지어 70%까지도 감소한 것을 밝혀냈는데요, 이에 대해 연구진은 기후변화가 농경사회였던 마야 문명에 치명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놀라운 연구 결과가 또 하나 발표되었는데요, 마야 문명의 멸망 원인이 수은과 관계가 있다는 분석이었죠. 호주와 미국, 영국의 공동 연구진은 최근 국제 학술지를 통해 마야 문명 시기의 대규모 도시였던 다수 지역에서 수은 오염의 증거를 발견했다고 발표했는데요, 이 내용에 따르면 연구진들은 마야 문명 시기의 도시였던 특정 지역 10곳을 뽑아 분석했고 그 결과 7곳에서 수은이 현대 환경기준치를 넘어선 수준으로 검출됐다고 합니다. 세계보건기구는 수은에 대한 농업 환경 기준치를 0.05ppm으로 잡고 있는데, 마야 문명의 대도시 티칼에서는 무려 17.16ppm이 확인됐다는데요, 때문에 연구진은 마야 도시의 토양 등 퇴적물에 묻힌 수은이 수세기 동안 마야인들이 사용한 결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마야인들은 왜 이렇게 많은 수은을 사용했을까요? 마야인들은 건물이나 도자기 등 생활용품을 빨간색으로 칠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때 사용한 페인트가 바로 진사였습니다. 진사의 주성분은 황화수은인데요, 이는 인간에게 치명적인 중금속이죠. 하지만 그 사실을 몰랐을 마야인들은 벽과 생활용품 군데군데 진사를 발랐고, 결국 진사가 빗물에 씻겨 내려가 토양과 수지를 오염시켰을 것이란 추론이 나온 것입니다. 연구진들은 마야인들이 수은 중독에 걸렸을 것이라고 단정짓진 않았는데요, 하지만 무덤에 묻힌 마야인의 치아나 뼈에서 수은이 검출된 사례가 있어 마야 문명 멸망 원인이 수은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